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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성의 위력
운영자  2004-10-16 07:55:23, 조회 : 5,032, 추천 : 724

한사상hanism,한철학hanphilosophy 한사상Hanism사이트: 한겨레의 상식에 바탕한 한철학Hanphilosophy,이 인류의 철학을 이끕니다.

  긍정성의 위력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이 몸에 대하여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으며 부정성의 위력으로 마음이 몸을 박멸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이 마음에 대하여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으며 부정성의 위력으로 몸이 마음을 박멸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과 몸은 둘 다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으므로 ‘너는 죽을 수도, 살을 수도 없다!’고 부르짖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이미 자살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마음과 몸이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고 부르짖으며 마음과 몸 모두를 부정하고 마음과 몸 모두를 박멸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늘이 땅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땅 위에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도덕이 과학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불편한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땅이 하늘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하늘 아래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과학이 도덕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삭막한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땅과 하늘이 서로 ‘너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한다면 그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과학과 도덕이 서로 ‘너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한다면 그 혼란한 세상에서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땅과 하늘이 모두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하늘과 땅이 모두 없는 텅 빈 곳이 진실한 진리의 세계라고 부르짖으며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해야 하는가? 과학과 도덕이 모두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과학도 도덕도 모두 없는 텅 빈 곳이 진실한 진리의 세계라고 부르짖으며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해야 하는가?

이러한 자기부정의 철학과 자기죽음의 철학들에서 ‘더불어 살기’라는 한겨레의 상식이 창조하는 긍정성의 철학 생명의 철학이 조금이라도 설명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지식욕구가 호기심 수준일 때 우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에서 벗어나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욕구가 진지하게 철학을 조직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온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들 중에는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야말로 놀랍도록 기이한 것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다. 어느 사회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은 정치?경제?사회?교육 등의 환경이 모든 사람들에게 ‘너 죽고, 나 살자!’를 강요함으로써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무섭고도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살은 쉽게 눈에 띄지만 집단의 자살이 감지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긍정성의 변증법은 부정성의 위력을 긍정성의 위력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대화와 타협과 화합과 사랑과 평화의 대상이 있을 뿐 싸워야 할 적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무적無敵의 철학이다. 부정성의 위력은 적이 존재할 때 내가 존재하며 악이 존재해주어야만 선이 존재할 수 있다. 긍정성의 위력은 일체 대상에 대해 평화와 사랑의 의지만 있을 뿐이다.
즉 ‘너와 나, 모두 함께 잘 살자!’가 긍정성의 철학의 바탕이다. 이 긍정성의 철학과 ‘너 죽고, 나 살자!’는 등의 부정성의 철학과의 차이는 살아 있는 생명과 죽은 생명이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이다. 그것은 백배의 차이나 만 배의 차이로 말해질 수 없는 차이이다. 그것은 있음과 없음의 차이이며 삶과 죽음의 차이이다.

물고기의 눈을 생각해보자. 물고기의 눈은 아주 가까운 것을 보기가 어렵고 또 아주 먼 것을 보기도 어렵다. 또한 물고기의 눈이 가장 보기 어려운 것은 물이다. 그리고 물고기의 눈이 보기 불가능한 것은 물고기 자신의 눈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개인의 문제를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집단과 민족과 국가단위의 문제를 찾아내기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개인과 달리 집단 특히 민족과 국가의 문제는 상식의 궤를 벗어난 터무니없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항상 긴 시간이 흐른 다음이기 때문이다.

인류단위의 문제를 찾아내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엉뚱한 이론이 고정관념이 되어 수천 년씩이나 흘렀다 해도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끝까지 발견하기 어려운 대상은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국가나 민족 또는 인류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출처: 한철학 1   생명이냐 자살이냐  최동환지음 지혜의 나무 발간   7~21 쪽 서장  한철학을 열며에서 옮김



권경훈
인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은 학습의 연속이 아닐지? 본성의 본질은 학습 ? 2005-09-22
03:47:35



Cassara
Kudos! What a neat way of tihknnig about it. 2011-04-20
18: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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